예수마을 셀 교회- 박 영 목사의 셀교회 이야기
소그룹 교회를 세운 이들은 대부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훈련을 받은 소위 평신도 사역자들이었다. 자신들의 생업과 일터가 있었고 전문 사역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집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집이라는 소그룹 중심의 초대교회를 모델로 한 교회가 바로 셀교회다. 건강한 셀교회를 세우는 핵심 포인트는 무엇일까. 첫째, 교회 핵심그룹이 셀교회의 가치로 무장될 수 있도록 기초 토양을 다지는 것이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면 교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리더, 목사, 사모, 그리고 중직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셀교회가 무엇인지, 셀교회의 핵심가치가 무엇인지, 소그룹 셀이 무엇인지 그 가치, 그 패러다임을 적당히가 아니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을 넘어 본인이 체험해야 한다. 내가 행복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목회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가를 얻을 돈이 없어서 52.8㎡(16평) 주공아파트에서 첫 개척예배를 드렸음에도 무엇이 목회 자신감을 충만케 했을까. 예수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목회 비전과 방향, 가치를 분명히 발견했기 때문이다. 소그룹 중심의 셀교회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자적인 부흥이 되든지 안 되든지 항상 감사가 넘쳤다. 둘째는 성령님의 풍성한 은혜를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셀교회는 성령님이 운행하시는 교회공동체다.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세워진 초대교회, 사도행전 교회를 모델로 삼고 있다. 따라서 철저히 성령님을 높이고, 성령님을 사모하고 교제하며 성령님께 고백하는 구조로 돼 있다. 목회자는 늘 성령님께 초점을 맞추는 게 습관이 되고 그래서 매 순간 성령님과의 만남이 일어난다. 셋째는 성도들이 행복해하고 헌신하는 것을 늘 보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하다. 소그룹 중심의 셀교회는 철저히 성령님 중심으로 나아가기에 성도들도 늘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님의 임재를 갈망한다. 교회를 찾아오는 새가족들이 불신자이든 기존 신자이든 간에 성령의 은혜가 임하고 구원의 감격이 넘친다. 단지 예수 믿고 천국행 티켓이나 확보한 것에 만족한 채 그저 내 맘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주 예수와 교회비전에 생명을 건 제자들, 담임목사와 함께 주의 길을 가려는 평생 동반자들이 든든하게 세워지고 있다. 그래서 목회가 너무 행복한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는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 하나님이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심으로 세워진 교회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떠했는가.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사도들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줬다. 또한 그들은 출교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믿었다. 더 이상 햇빛을 보지 못하는 지하묘지 카타콤에 숨어서 생활해야 하는 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를 믿었다. 순교의 잔을 마실지라도 기꺼이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세례를 받았다. 한마디로 혁명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어떠한가. 교회를 다닌 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구원의 확신조차 없다. 구원을 확신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 모든 삶의 통치권을 내어드리고 그분만을 위해 사는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며 그분만을 위해 사는 삶이 무언가 부담스러운 것이기에 적당히 얼버무리고마는 성도가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과연 “천하를 어지럽게 하며” 급속히 지중해 연안 일대로 번져가던 그 엄청난 복음의 능력이 현대 성도에겐 해당되지 않는, 초대교회의 추억에 불과하단 말인가. 작금의 이와 같은 비성서적인 현상은 어디서 왔을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금은 매우 특별한 일이 돼버렸을까. 모든 것은 한 가지 문제로 귀결된다. 그것은 교회의 본질이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최초의 가정인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소그룹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려는 계획을 세우신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공동체에 주신 비전, 사명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 복은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돼야 한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생산자가 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우리에게 다시 생육, 번성, 충만, 정복의 사명을 주셨다. 그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지만, 오직 12명을 부르셔서 소그룹 가족공동체를 경험케 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승천하시기 직전에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비전을 주셨다. 바로 소그룹을 통한 제자화의 비전이다. 그래서 신자가 아닌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바로 12명의 소그룹을 통한 제자화인 것이다.